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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폴 워셔

Nicole1004 2016. 6. 30. 18:34

거듭남의 기적은 육에 속한 사람이 싫어하는 "복음 전파"를 통해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틀림없이 역사하실 것이다. ....설교자는 육에 속한 사람들의 부패한 마음이 원하는 것을 공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의 역할은 그들이 성령의 기적적인 역사로 복음의 참 맛을 느끼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기까지 그들에게 참된 양식을 제공하는 것이다.(21쪽)


그런데 요즘에는 영원한 구원의 약속만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현대인은 복음이 실생활에 무슨 도움을 주는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첫째, 설교자가 더 이상 심판의 확실성과 지옥의 위험을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성경에 근거해 이 진리를 명확하게 전한다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영원한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에 비하면 현재의'실제적인' 필요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둘째, 교회당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이 육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내세보다 현세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과 영원한 운명에 무관심하다. 사람들은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데도 성화를 가르치는 설교보다는 자존감이나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말을 더 좋아한다. (37)


복음은 거리끼는 것이 되어야 한다.....복음을 시대의 유행이나 육에 속한 사람들의 욕구에 순응시키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라. 우리에게는 타락한 세상이나 거듭나지 못한 교인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복음의 거리끼는 것을 순화시키거나 복음의 과격한 요구를 약화시킬 권리가 없다. (74)


인간의 타락한 상태와 도덕적 부패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전에는 구원을 베푸는 복음의 능력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사람들이 구원받으려면, 복음 선포를 통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나야만 한다.


성경은 구원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데, 왜 현대인의 영혼은 구원의 약속만으로는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현대인에게 복음이 호소력을 갖추려면, 왜 다른 속된 약속들을 덧붙여야 하는 것일까?

첫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자신이 당하게 될 위험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 구원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는 스스로가 처한 위험이 무섭다는 것을 얼마나 의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옥의 현실과 하나님의 진노를 분명하게 알아야만, 복음을 통한 구원의 진가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